통계집중탐구한민경 | 경찰대학교 교수
통계집중탐구
범죄자를 추적하는 데이터:
사회연결망분석을 활용한
범죄수사
경찰 등 형사사법기관이 범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이제 일반 시민들도 한번쯤 들어보았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되었다. ‘데이터 중심 경찰활동(data-driven policing)’과 ‘증거 기반 경찰활동(evidence-based policing)’이 강조됨에 따라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한층 중요해졌다.
통상 범죄 관련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기준은 크게 ① 범죄가 발생한 시·공간, ② 범죄사건, ③ 범죄자의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리나라 경찰의 경우 범죄가 발생한 시·공간에 대한 정보는 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GeoPros; Geographic Profiling System), 범죄사건에 대한 정보는 과학적 범죄분석 시스템(SCAS; Scientific Crime Analysis System), 범죄자에 대한 정보는 전자수사자료표 시스템(E-CRIS; Electronic Criminal Record Identification System)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과학치안을 지향하는 경찰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범죄자들의 연결 관계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범죄수사에서 범죄자의 역할을 특정하고 여죄를 파악하는 데 데이터가 긴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범죄자들의 연결 관계 데이터를 분석하는 틀은 사회연결망분석(Social Network Analysis; SNA)에 기반하고 있다.

9·11 테러 사건을 계기로 범죄수사 방법으로 본격 사용된 사회연결망분석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사회적 지위라고 정의할 때, 범죄단체 조직원도 그 단체의 맥락에서는 하나의 사회적 지위에 해당한다. 사회연결망분석은 사회학의 전통에 따라 사회적 관계에 접근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고안하였다. 역할분담과 위계구조가 명확하고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범죄단체들은 조직원들 간의 관계 유형과 상호작용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전형적인 연결망이다.
사회연결망분석이 발전되어온 초기부터 집단에 의한 범죄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회연결망분석이 활용될 수 있음을 포착한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갱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연구(Baron & Tindall, 1993)나 성범죄자들의 동료 지지(peer support)에 대한 연구(Hanson & Scott, 1996),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마약 거래 연결망을 파악한 연구(Lichtenstein, 1997)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는 당시까지 학문적인 ‘연구’ 방법에 그치고 있던 사회연결망분석이 실무적인 범죄‘수사’ 방법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사회연결망분석은 테러범들이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고 동시다발적으로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활용되었다.
4대의 항공기를 납치한 테러범 19명은 모두 알-카에다 조직원으로, 이들의 관계는 Nawaf Alhazmi(이하 ‘알-하즈미’)와 Khalid Almihdhar(이하 ‘알-미드하’)를 중심으로 수집된 정보에 근거해서 파악되었다. 사건 발생 전인 2000년 초부터 CIA는 알-하즈미와 알-미드하가 테러를 모의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감시해왔는데, 이 둘이 테러범 19명 중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테러범 19명의 직접적인 연결 관계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면 다음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머지 테러범 모두 알-하즈미 또는 알-미드하와 직접적인 교류를 맺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결망 중앙에 알-하즈미와 알-미드하가 위치하고 있는 것은 CIA가 이 두 조직원을 감시하여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파악된 연결망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러나 연결망의 범위를 9·11 테러에 가담한 공범들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알-하즈미와 알- 미드하가 직·간접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들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해보면 다음 그림과 같이 알-하즈미와 알-미드하는 연결망의 주변부로 위치가 조정되는 한편, 연결망에 속한 행위자들 사 이를 연결해주는 또 다른 행위자가 발견된다. Mohammed Atta(이하 ‘아타’)는 9·11테러에 직 접 가담한 공범들의 연결망과 직접 가담하지 않았지만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연결망을 잇는 ‘중개자(brokerage)’로, 높은 중심성(centrality)을 갖는다.
사회연결망분석으로 살펴보기 전에는 공범 중 한 명이라는 것 외에는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던 아타는 실제로는 9·11테러에 직접 가담했을 뿐만 아니라, 알카에다 조직의 자금거래를 지원하고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사회연결망분석이 아니었다면 9·11 테러를 간접적으로 지원한 연결망이 배후에 존재하였다는 사실이 자칫 간과될 수 있었다.
데이터 간의 관계에서 범죄수사의 실마리를 찾는다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이 데이터 간 관계 분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에는 범죄 수법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조직화·지능화되고 있는 경향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과거와는 달리 소매치기나 날치기 사건은 크게 감소한 데 비해, 전화로 수사기관 등을 사칭하면서 송금을 요구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 소위 보이스피싱 범죄는 2000년대에 최초 등장한 이래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통상 ‘총책’을 중심으로 자금관리 또는 교육을 담당하는 ‘간부’급 조직원, ‘상담원’, 피해금을 인출해서 전달해주는 ‘인출책’ 내지 ‘전달책’으로 구성된 범죄단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고도로 분업화·익명화된 보이스피싱 사기 조직을 검거하는 것은 한층 어려워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IT 기술은 범행을 뒤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범행과정에서 무심코 노출된 정보, 예컨대 통화내역·IP 주소 등과 같은 통신자료 내지 통신사실확인자료3, 계좌거래내역 등을 발견한다면 범죄수사를 개시하기 위한 단서로 활용해볼 수 있다. 사회연결망분석은 막연히 서로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서들이 실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경찰이 수사 현장에서 범죄자의 인적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IBM의 i24이다. 경찰관들은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대량의 데이터를 살펴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데, 전문적인 데이터 분석기법을 익힌 경우가 드물다 보니 며칠 밤낮을 고심한다 하더라도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수집된 데이터의 형태가 일관되지 않은 것 또한 데이터 속에서 빠르게 범죄의 단서를 찾아야 하는 경찰관들에게는 곤혹스러운 문제였다.
이에 경찰은 2015년 데이터 간 관계를 체계적이면서도 신속하게 분석하기 위한 목적에서 i2를 도입하였다. 그와 동시에 경찰은 수집된 데이터들을 사회연결망분석에 활용할 수 있도록 클리닝 및 표준화하는 프로그램(i1) 및 관할 경찰관서에서 인지된 범죄사건에 대하여 다른 경찰관서에 공조수사 및 정보공유를 요청하는 시스템(i3)을 함께 구축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사회연결망분석에 기반한 i2는 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산 내지 분절된 형태로 수집된 데이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경찰이 범죄단체 구성원들의 역할을 파악하고 범죄수익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경찰은 i2로 분석된 데이터들 간의 연관관계를 통해 숨은 공범들을 찾아내기도 하고, 의심되는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며, 수사를 보강해야 할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시각화된 피의자들의 연결 관계는 이들의 범행 관련성을 입증하는 증거로도 활용될 수 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아주 작은 단서가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프라인에서의 범죄자는 지문이나 족적을 남긴다면, 온라인에서의 범죄자는 데이터를 남긴다는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조직화·지능화된 범죄는 아주 작은 데이터 조각도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게 하지만, 경찰은 범행과정에서 생성된 사소한 데이터라도 무심코 넘기지 않고 그 연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